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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 운동은 두 달 넘게 지속되었다

우리는 삼일절을 하루만 기념하지만
3.1 운동은 두 달 넘게 지속된 항일
독립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평양 등에서
시작해 초기에는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남부 지역에도 점차 시위가
확산되었다. 3월 말~4월 초에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며
3.1 운동의 절정기를 맞았다. 1919년
3월~5월까지 총 1,798건의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2) 해외에서도 3∙1 운동이 있었다

3.1운동의 물결은 해외로까지
퍼졌다. 만주, 연해주, 러시아, 미국 등
국외에 거주하던 한국인에게도
퍼져나가 1919년 3월~5월까지
110건이 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3) 두 집당 한 명은 3.1운동에
참여했다

3.1 운동 참여자는 100만~200만 명으로 추산한다. 평균 150만 명으로 보면, 1919년 말 조선인 인구(1,678만여 명) 기준으로 9%가 3.1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당시 한 집의 가족을 5~6명으로 보면 두 집당 한 명은 3 .1 운동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4) 비밀리에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만세의 물결 속에서 독립선언서가 퍼졌어요. 독립선언서는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낭독하면서 3∙1 운동의 대장정이 시작됐어요. 비밀리에 인쇄된 2만 1천 매의 독립선언서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각지에 배포되었다.


5) 3.1 운동은 목숨을 건 시위였다

3∙1 운동에 대해 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력 탄압으로 대응하였다. 연구 참고용 자료에 나와 있는 사망자만 780~1,148명. 당시 사상자 조사 자차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 독립운동가가 집계한 사망자 수는 7,500여 명, 부상자는 1만 5천여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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