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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날 것과 익힌 것을 주로 먹는다. 네 발로 기어다니던 초기 인류가 생식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진화의 단계를 밟았다면 두 발로 걸어다니던 직립 인류는 화식을 기반으로 지구상의 전 대륙으로 퍼져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이뤄나갔다. 예술과 문학 등 다양한 지적 활동을 시작한 인류의 왕성한 호기
심은 급기야 날 것도, 익힌 것도 아닌 발효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로써 단조로운 식생활에서 벗어나 더
색다른 맛을 추구하게 되는데 술, 장, 빵과 치즈 등이 그것이다.

발효와 부패는 다르다. 발효는 세균, 효모, 곰팡이등의 미생물이 음식물에 작용해 사람에게 유익한
생산물로 변화한 현상이고, 부패는 미생물들이 작용한 결과가 사람에게 유익하지 못한 생산물로 변화
한것이다. 발효의 발견은 술에서 비롯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발효를 뜻하는 Fermentation은 끓는다의 라틴어 Ferverve에서 유래된 것으로 효모의 알코올 발효시에 발생하는 탄산가스에 의해 거품이 이는
현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발효의 기술을 더욱 능숙하게, 세련되게 완성시킨 민족이 우리 선조들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 민족을 가리켜 발효음식을 잘 만든다는 뜻으로 '선장양'이라고 했으며 발효 음식을
가까이하는 탓에 몸에서 나는 특유의 메주냄새를 '고려취'라고 했다. 술은 물론 장과 김치, 젓갈 등으로 찬란한 발효 문화를 꽃피운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고기를 이용한 중국의 육장과 달리 콩을 이용한 두장을 
제일로 쳤는데 그것은 바로 나라 살림과 가정살림의 기반이었다. 최초의 장은 간장과 된장이 섞인 혼용장이었는데 삼국시대에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여 그 효용 가치를 더 높였다. 신라 신문왕 3년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때 예물로 보낸 품목에는 장과 메주인시 등이있다. 고려 현종 9년과 문종 6년에는 나라에 기근이들어 굶주린 백성을 위해 장을 배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장이 등장하는데 문헌에 나오는 장의 종류만도 120여종이 족히 넘었
으며 법도 있는 집안의 여자는 36가지 장담그는법을 안다고했다. 장의 전성시대였다. '장이달면 복이
든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하여 가문의 길흉화복을 장에 의존했고 가족의 구성도 장을 매개
체로 '장맛보고 딸준다' '며느리가 잘 들어오면 장맛이 좋아진다'라고 판단할 정도였다. 우리 음식의
기본은 양념이고 양념의 기본은 장이었으니 집안의 대소사를 결부시켜 그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임금이 국난으로 피난을 가게되면 미리 합장사라는 직책의 사신을 현지에 보내 된장을 준비하도록 했다고 한다. 선조 30년 정유재란을 맞은 선조는 함경도로 피난하기 위해 합장사로 신씨를 선임했으나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신씨 성은 시어짐을 의미하는 산과 같으므로 장을 버리게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급기야 신씨나 신씨 성을 가진 집에서는 사돈이나 친지집에서 장을 담아오는 유난을 떨 정도로 장에 목을 맸다. 그런 장의 고마움을 표현하기위해 선조들은 장의 다섯가지 덕을 칭송했으니

- 단심(丹心): 다른맛과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

- 항심(恒心): 오래두어도 상하거나 변하지않는다.

- 불심(佛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한다.

- 선심(善心): 매운맛이나 독한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한다.

- 화심(花心):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되고 자연과 동화한다.

간장도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니 여기서 장은 된장을 말한다. 그리고 된장의 오덕이 하나가 되는 날이 바로 말날이다.

- 출처 : 허영만의 <식객> 18권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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